민법총칙 판례평석 과제를 하다가, 마흔 페이지짜리 판결문 PDF를 클로드에 던져놓고 '요약해줘' 딱 세 글자를 쳤다. 돌아온 건 목차를 풀어 쓴 것 같은 밍밍한 다섯 줄이었다. 틀린 말은 없는데, 정작 내가 알고 싶던 '이 판결이 왜 중요한가'는 쏙 빠져 있었다. 그대로 리포트에 옮길 문장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같은 자료를 두고 요약 프롬프트만 이리저리 바꿔가며 계속 시켜봤다. 그러다 알게 된 건, 요약은 '무엇을 요약하느냐'보다 '어떻게 시키느냐'에서 결과가 갈린다는 거였다. 그래서 자주 쓰게 된 방식과 손이 안 가게 된 방식을 순위로 정리해봤다.
순위부터 말하면
1위는 목적·분량·형식을 한 문장에 다 담는 방식, 2위는 여러 자료를 표로 뽑는 비교 요약, 3위는 한 줄에서 시작해 점점 늘려가는 계층 요약, 그리고 꼴찌는 조건 없이 던지는 '요약해줘'였다. 아래에서 실제로 쓴 프롬프트와 함께 하나씩 풀어본다.

가장 먼저 반성부터 하자. '요약해줘'는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을 통째로 클로드에 맡기는 주문이다. 문제는 판결문에서 뭐가 핵심인지가 읽는 사람 목적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판시사항이 궁금한지, 사실관계가 궁금한지 알려주지 않으면 클로드는 '평균적으로 무난한' 요약을 내놓는다. 그 결과가 딱 교과서 목차 같은 다섯 줄이었다.
한번은 헌법 판례를 이렇게 요약시켰더니 첫 줄에 '이 사건은 기본권 침해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이다'라는 하나 마나 한 문장이 왔다. 원문에 없는 말은 아니지만, 이런 요약은 원문을 다시 안 읽게 만들 뿐 공부에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됐다.
다음으로 시도한 건 요약을 '단계별'로 뽑는 방식이다. 한 문장으로 먼저, 그다음 다섯 줄로, 마지막에 문단별 상세로 — 이렇게 층을 나눠 달라고 하면 자료의 뼈대부터 눈에 들어온다. 실제로 쓴 프롬프트는 이거였다.
프롬프트: 아래 판례평석을 세 단계로 요약해줘. (1) 한 문장 요약, (2) 다섯 줄 요약, (3) 문단별 상세 요약. 각 단계는 앞 단계를 더 풀어 쓴 형태여야 하고, 원문에 없는 내용은 절대 넣지 마.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한 문장 요약만 봐도 '아, 이 글 핵심이 이거구나' 하는 감이 오고, 시간 없을 땐 다섯 줄까지만 읽으면 됐다. 아쉬운 점은, 자료가 원래 단순하면 세 단계가 같은 말을 길이만 늘려 반복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분량이 어중간한 자료엔 오히려 과했다.
판례를 여러 개 한꺼번에 정리할 때 제일 요긴했던 게 표 요약이다. 민법 사례형을 공부하면서 비슷한 쟁점의 판례 세 건을 비교해야 했는데, 줄글 요약으로는 서로 뭐가 다른지 한눈에 안 들어왔다. 그래서 아예 출력 형식을 표로 못 박았다.
프롬프트: 아래 판례 세 건을 표 하나로 요약해줘. 열은 '사건 쟁점 / 법원 판단 / 근거 조문 / 결론' 네 개로 만들고, 각 칸은 한 줄로 짧게.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 칸은 채우지 말고 '언급 없음'이라고 적어줘.
표로 받으니 판례끼리 어디서 갈리는지가 확 보였다. '근거 조문' 열만 훑어도 복습이 됐다. 특히 '확인 안 되면 언급 없음'이라고 못 박은 게 신의 한 수였는데, 이 지시를 빼면 클로드가 빈칸을 그럴듯한 내용으로 채워 넣으려는 버릇이 있었다. 이 얘기는 뒤에서 더 하겠다.
가장 자주 쓰게 된 건 결국 제일 기본적인 조합이었다. 이 요약을 '왜' 쓰는지, '몇 자'로, '어떤 형식'으로 원하는지를 한 문장에 다 넣는 것이다. 조건이 구체적일수록 결과가 내 리포트에 바로 붙일 수 있는 형태로 나왔다.
프롬프트: 아래 논문을 민법총칙 리포트의 배경 설명 부분에 쓸 용도로 요약해줘. 법학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이 읽는다고 가정하고, 400자 안팎으로, 저자의 핵심 주장과 근거를 중심으로 정리해줘. 개별 예시나 각주 내용은 빼고 논지만.
'배경 설명용'이라는 목적 하나를 알려주니 요약의 결이 확 달라졌다. 사소한 예시는 알아서 걸러내고 논지 위주로 정리해줬다. 분량을 400자로 못 박은 것도 좋았는데, 안 그러면 어떨 땐 세 줄, 어떨 땐 스무 줄로 들쭉날쭉했다. 조건 하나를 더할 때마다 결과가 눈에 띄게 쓸 만해졌고, 이게 '요약해줘'와의 결정적 차이였다.
순위와 별개로, 요약은 원문을 압축하면서 반드시 무언가를 버린다. 그 '버리는 판단'을 AI가 대신하다 보니 사고가 난다. 내가 실제로 겪은 세 가지다.
첫째, 없는 내용을 채워 넣는다. 표 요약에서 빈칸을 두면 클로드가 '아마 이럴 것이다' 식으로 그럴듯하게 메꾸려 한 적이 있다. 판례 근거 조문을 실제와 다른 번호로 적어둔 걸 원문과 대조하다 발견했다. 그 뒤로 '확인 안 되면 언급 없음'을 습관처럼 붙이게 됐다.
둘째, 뉘앙스를 뭉갠다. 판결이 '원칙적으로는 A지만 예외적으로 B'라고 한 대목을, 요약에선 그냥 'A다'로 단정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요약만 믿고 리포트에 썼다간 판례를 정반대로 이해하는 셈이 된다.
셋째, 숫자와 조문은 항상 원문과 다시 대조한다. 요약이 아무리 매끄러워도 조문 번호, 판결 연도, 당사자 관계 같은 사실은 내 눈으로 원문에서 확인하는 게 원칙이다. 나는 요약을 '원문을 빨리 읽기 위한 지도'로만 쓰고, 정작 리포트에 넣을 인용은 반드시 원문에서 직접 따온다.
요약을 시험공부로 연결하는 법은 예전에 클로드로 논문 요약하고 스터디하는 법에서 다뤘고, 요약뿐 아니라 두루 통하는 프롬프트 요령은 클로드 프롬프트 작성 꿀팁 10가지에 정리해뒀으니 겹치는 부분은 그쪽을 참고하면 된다.
정리하면, 요약 프롬프트는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왜, 얼마나, 어떤 형식으로'만 붙여도 '요약해줘' 세 글자와는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오늘 긴 자료를 만나거든, 딱 한 줄, 목적부터 붙여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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